[달러의 부활] 브레튼 우즈의 붕괴

2022. 4. 9. 20:10Economics

Paul Volcker 전 연준 의장의 "CHANGING FORTUNES"를 리뷰한 글입니다.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는

미국은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이는 1970년대 미국인들의 삶에 상당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참전으로 인해 미국은 막대한 예산을 국방비에 쏟아붓게 되고, 이는 결국 재정적자의 확대로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트리핀 딜레마"에 의해 세계 경제가 팽창하면 팽창할수록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를 보는 구조가 지속되었고, 여기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급격하게 늘어난 국가 채무, 그리고 통화 팽창 정책으로 인해 달러의 가치는 1960년대 들어 심각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참전 이후로 달러 공급량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달러의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했으며, 고정환율제 하에서 유럽은 미국이 이 인플레이션을 유럽으로 수출하지 않을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1965년 프랑스의 샤를 드 골 대통령은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금과 공식적인 환율로 바꿔달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1971년 들어서 달러 통화량이 10% 늘었고, 이에 따라 프랑스 이외의 다른 나라들도 달러를 금으로 바꾸기를 원했고 브레튼 우즈 체제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닉슨 쇼크와 스미스소니언 합의

1971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84% 였고, 닉슨 쇼크가 있었던 8월 기준으로 실업률은 6.1%였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8월 15일 일요일,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하며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하기로 통보했고, 임금과 가격을 90일 동안 동결하고, 수입품에 10%에 관세를 붙이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즉, 정부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하게 된 것이며, 이는 미국 정치적으로는 큰 효과를 가져왔지만, 세계 경제를 큰 혼란에 빠뜨렸다.

 

 

이후 미 정부는 브레튼 우즈 체제를 유지하고자 스미스소니언 합의를 통해 미국외 각국의 통화 절상을 합의했지만, 1973년에 달러가 1온스당 42.22달러로 다시 한번 평가절하되면서 각국은 변동 환율제로 이행하였고, 스미스소니언 협정은 파기되었다. 이때 이후로 세계 통화 제도에서 금은 어떠한 특별한 지위도 갖고 있지 않으며, 각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량을 유동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경제 문제에 대응하도록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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