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부활] 브레튼 우즈

2022. 4. 4. 08:17Economics

Paul Volcker 전 연준 의장의 "CHANGING FORTUNES"를 리뷰한 글입니다.

 

 

 

 

브레튼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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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튼 우즈 체제는 그 성격상 '금본위제'와 같은 고정환율을 지지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즉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일단 각국은 자국 통화와 금 사이의 교환비율을 정하되 상하 10% 범위 내에서 교환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고, 통화의 교환비율을 금 이외의 다른 나라의 통화에도 고정시킬 수 있도록 했다. 원칙은 이러했으나 실질적으로 체제를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고, 브레튼 우즈 체제는 금 1온스당 35달러를 기준으로 각국의 통화가 달러에 대해 고정 환율을 운용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체제 하에서 미국에게는 달러 가치, 즉 달러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고 주요 정책들도 이 신뢰를 지키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근본적인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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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율제의 가장 큰 문제는 "국제 수지" 문제에 대해 취약하다는 것이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초래한 이유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것도 바로 금본위제로부터 비롯된 고정환율을 악용한 "빈번한 평가 절하"였고, 이는 근본적으로 고정환율제의 성격을 띠는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도 드러났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MF를 설립하여 국제 수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환율을 건드리지 않고 국제 공조를 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지만, IMF는 출연금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구조였기에 결국 이조차도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흔드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띄면서 팽창하면 팽창할수록 미국이 보유한 금을 잃게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1960년대 초 미국은 연간 20억 ~ 30억달러 수준의 국제수지 적자를 보이기 시작했고, 1964년 해외 공적 기관이 보유한 달러가 미국의 전체 금 보유량보다 많아졌다. 브레튼 우즈 체제 자체가 미국의 "태환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달러의 신뢰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했고, 이를 위해 당시 케네디 정부(JFK)는 온스당 335달러의 금 가격의 "신성함"을 위해 미국 내 정책을 제약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미국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케네디 정부가 미국의 성장을 위해 팽창정책을 펴게 되면 달러의 유출이 더 심해져 국제수지 적자와 함께 달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때문에 케네디 정부는 세금 감면 정도의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트리핀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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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에 의존하는 브레튼 우즈 시스템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일 수 밖에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 무역 규모가 날로 증가하면 고정환율제에서 각국이 이용 가능한 준비금도 증가해야 한다. 즉, 늘어난 국제 무역과 투자에 쓰일 국제 통화가 더 확대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정된 환율 하에서 미래의 금 생산량은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다. 따라서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성장 지원에 필요한 국제 유동성의 원천은 "달러"밖에 없다. 하지만 이 달러를 미국 바깥 경제에 공급할 유일한 통로는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를 의미하며,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증폭될수록 미국의 신뢰도, 즉 달러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설립자들은 무심코 미국의 적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국제통화제도를 창설하고 만 것이다. 기축통화가 갖추어야 할 "충분한 공급"과 "신뢰"는 달러의 태생부터 동시에 갖춰질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1971년 닉슨 정부에서 금태환을 정지시키면서 브레튼 우즈 체제는 붕괴하게 된다. 세계를 회복시켰던 바로 그 체제가 세계를 더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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