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향해 달려나가는 사람의 본성

2023. 8. 13. 10:42Philosophy & Thinking

Quotes

전군을 한 사람처럼 단결시키는 것은 오직 공정한 지휘와 관리에 달려 있다. 강건한 자와 유약한 자 모두 용감히 싸우게 만들려면 지형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용병을 잘하는 장수가 전군을 마치 한 사람을 부리듯 하는 것은 객관적인 형세가 전군으로 하여금 그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군사 지휘는 계책이 침착하며 주도면밀해야 하고, 부대 관리 또한 엄정하고 조리가 있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먼저 병사들의 눈과 귀를 가려 작전 계획 등을 전혀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작전 부서를 바꾸고 원래 계책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주둔지를 바꾸고 행군로를 우회해 내막을 추측할 수 없게 한다.

작전 임무를 부여할 때는 마치 사람을 높은 곳에 오르게 한 뒤 사다리를 치우는것 처럼 한다. 적지 깊숙이 들어갔을 때는 전기가 무르익기를 기다려 도강 후 배를 태우고 취사용 가마솥을 깨뜨리는 분주파부 방법으로 필사의 각오를 드러낸다. 양떼를 몰듯 병사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는 까닭에 아무도 가는 곳을 모른다.

이후 전 병력을 집결시킨 뒤 위험한 곳에 투입해 결사적으로 싸우게 만든다. 이를 일컬어 ‘장군이 취해야 할 기본 임무’라고 한다.

여울이 급하고 거세게 흐르면서 무거운 돌까지 뜨게 만드는 것을 “기세”라고 한다. 맹금이 질풍같이 달려가 다른 새를 잡아 죽이는 것을 “절도”라고 한다. 전쟁을 잘 하는 자는 기세가 맹렬하다. 절도 또한 극히 간명하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승리의 관건을 전세에서 찾을 뿐, 일부 장병의 용맹에 기대지 않는다. 인재를 선발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법으로 유리한 전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요체다.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자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 마치 통나무나 돌을 굴리는 것처럼 자유자재하다. 통나무나 돌은 성질상 안정된 곳에 두면 가만히 있지만 비탈지고 위태로운 곳에 두면 쉽게 움직인다. 모난 나무와 돌은 정지하고, 둥근 나무나 돌은 저절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전쟁을 잘하는 자가 이끄는 전세를 보면 마치 1000길 높은 산 위에서 둥근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병세다.


Thoughts

최근 관심을 갖고 고찰하고 있는 3가지의 사자성어가 있다. “대여대취”, “호리지성”, “오월동주”가 그것이다.

대여대취(大予大取)란 “크게 주고 크게 얻어라. 큰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큰 미끼가 필요하다” 라는 의미이며
호리지성(好利之性)은 “사람의 본성은 본디 이(利)를 좋아하여, 이를 좇는 일에 바쁘다.” 라는 의미이고,
오월동주는(吳越同舟) “원수지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생존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이를 이어서 생각해보면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큰 이익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사람의 본성은 본디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큰 미끼를 던져야 하며, 서로 다른 이들이, 혹은 그다지 가깝지 않거나 달갑지 않은 이들이지만 큰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이들이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전에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인간 이라는 글에서 밝힌 바 있듯, 나는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이다. A라는 일을 하는데에 있어서 동시에 B, C를 하는 것이 A라는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준다면, 그리고 B, C를 하는데 있어서 리소스가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로그함수적으로 증가한다면, A, B, C를 동시에 하는 것이 A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구조가 크게 2가지이다. B, C라는 일을 추가적으로 하는 것이 A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과, B, C를 추가적으로 하는데에 드는 리소스가 로그함수적으로 증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첫번째 구조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과, 유추하는 방식을 잘 고려해보아야 한다. 여기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사고의 본질”이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을 먼저 인용하겠다.

우리가 말하는 ‘추론하다’는 단지 어떤 새로운 정신적 요소를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도입하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으로 이 말은 현재 활성화된 개념의 어떤 측면이 휴지 상태에서 벗어나 환기되는 것을 뜻한다. 이 새로운 요소가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치 않다. 이전 요소로부터 논리적인 흐름을 따랐는지 여부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추론’은 단지 어떤 새로운 요소가 머릿속에서 활성화되었음을 뜻한다.


B, C라는 일을 하는 것이 A라는 일을 잘 하는데 있어 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내가 A라는 일을 할 때 특정 프레임과 컨텍스트에 갇혀 사고가 굳어가는 것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즉 내가 A라는 일을 바라보는 데에 작용하는 컨텍스트를 확장시켜주고, 다른 방향으로 추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이는 A라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구절과 같이, 추론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현재 활성화된 개념의 어떤 측면이 휴지 상태에서 벗어나 환기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추론 능력은 여러 개념의 여러 측면들을 의식의 기저에서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동시에 여러일을 하면서 서로 다른 일들의 컨텍스트를 상호적으로 확장시키고, 여러 개념들의 여러 측면들을 확장시키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의 누적은 “무엇을 크게 얻을 것이며, 그러기 위해 무엇을 크게 던질 것인가”를 사고하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손자병법에서는 장군에게 “병사들의 눈과 귀를 가려 작전 계획 등을 전혀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여기서의 작전 계획을 주관적으로 접근해서 “무엇을 크게 얻을 것이고, 그래서 무엇을 크게 던질 것인가”로 생각해본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론 능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큰 것을 던진 것이지만, 국지적인 측면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향해 달려나가고, 그 이익의 획득을 통해 만족을 얻으며, 각자의 이익획득 행위를 통해 자연스럽게 큰 목적을 달성하는 그림을 그려야 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사 지휘는 계책이 침착하며 주도면밀해야 하고, 부대 관리 또한 엄정하고 조리가 있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먼저 병사들의 눈과 귀를 가려 작전 계획 등을 전혀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작전 부서를 바꾸고 원래 계책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주둔지를 바꾸고 행군로를 우회해 내막을 추측할 수 없게 한다.

결론적으로 정보의 접근성이 매우 높아진 지금,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이 큰 그림을 적절한 수준으로 감추기 위해서는 고도의 추론 능력이 필요하며, 이는 동시에 연관있는 여러 가지 일을 통해 추론 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데에 그 요체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구조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레버리지(Leverage)를 사용해야 한다. 내가 어떤 1개의 일을 하는데 100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할 때, 최선을 다해서 1개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면, 이는 레버리지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1개의 일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20을 사용하고 이 1개의 일을 같이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여기에 20씩 보태줄 여러 사람들과 같이 이 1개의 일을 한다면, 나는 나머지 80으로 4개 이상의 일을 더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100의 에너지를 가지고 5개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기꺼이 참여하고, 그들이 나와의 의리와 정에 기대지 않고(물론 있어서 나쁠건 전혀 없다. 오히려 좋다. 다만 이익이 없이 이것들로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익을 얻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손자병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전군을 한 사람처럼 단결시키는 것은 오직 공정한 지휘와 관리에 달려 있다. 강건한 자와 유약한 자 모두 용감히 싸우게 만들려면 지형을 잘 활용해야 한다.

용병을 잘하는 장수가 전군을 마치 한 사람을 부리듯 하는 것은 객관적인 형세가 전군으로 하여금 그리 움직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자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것이 마치 통나무나 돌을 굴리는 것처럼 자유자재하다. 통나무나 돌은 성질상 안정된 곳에 두면 가만히 있지만 비탈지고 위태로운 곳에 두면 쉽게 움직인다. 모난 나무와 돌은 정지하고, 둥근 나무나 돌은 저절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전쟁을 잘하는 자가 이끄는 전세를 보면 마치 1000길 높은 산 위에서 둥근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로 병세다.


어떤 일에 참여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동일하다면, 어떤 사람이든 최대한 적게 일하면서 동일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형과 기세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개인의 관점으로 생각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Y라는 사람에게 “A라는 일을 같이 해보자” 라고 했을 때, 이 A라는 일이 Y라는 사람이 현재 관심있게 보고 있는 영역이라면, 혹은 최근에 경험했었거나, 이로 인한 다소의 아쉬움이 있는 상황이라면, 이 사람은 A라는 일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통나무가 굴러가듯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세인 사람에게 A를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하면서 이익을 제시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제시하는 것에 비해 서로에게 더 높은 가치를 준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나는 큰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는 “큰 돈을 벌고 싶다”라기보다는 “문명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싶다”에 가깝다. 그렇기 위해서는 큰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며, 이들이 큰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의리와 관계 맺기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스케일이 커졌을 때 모든 관계가 그렇게 동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기 때문에 “오월동주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잘”하는 방식을 넘어서 “더 크게”, “더 많은 일을”, “더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여러 방식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현재는 이 레버리지 방식이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안티프래질한 성질을 띄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더 해야하는가의 관점에서 옵션을 어떻게 추가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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